운동으로서의 문학, 1980년대 노동문학
- 정화진 「쇳물처럼」, 방현석 「새벽출정」 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1980년대는 한국 문학사에서 유례가 없는 문학 운동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실천 지향적인 노동문학이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사회 정치적으로 가장 위상을 떨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진 혁명적 조건들이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온 기형적 성장은 유신체제라는 사회적 통제와 맞물려 다양한 사회적 모순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한 산업화의 반동으로 가장 심각했던 갈등은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이었고, 그 최대 희생자는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이었습니다. 공업 우선 정책으로 농촌이 낙후되자 소외된 농민들은 대도시에서의 새 출발을 기대하며 도시로의 이행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것은 도시 하층민이라는 또 다른 불합리였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공장 노동자로서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사회적 모순이 정치권력의 일방적인 횡포와 호도에 의해 왜곡되는 상황이 계속되자, 체제에 대한 비판과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비판적인 지식인과 청년 학생들 사이에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행동의 중요성1)을 일깨운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1987년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같은 해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혁명적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노동자는 사회변혁의 주체라는 이념적 규정이 1980년대를 지배"2)하기 시작하면서 80년대 노동문학이 절정을 맡게 됩니다.
1980년대 노동문학은 당대 문학의 확고부동한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20세기 들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바람이 거세게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노동문학은 80년대 그 정점을 찍고 후일담 문학,, 애도 문학의 추억거리로 전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사적 의미는 분명 가치를 지니며 노동문학의 한계에 대해서 폄하하던 시선도 오늘날 점차 새로운 가능성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관점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80년대 노동문학을 대표했던 두 작품을 살펴보고, 그 문학사적 의의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2. 운동으로서의 문학
-정화진 「쇳물처럼」, 방현석 「새벽출정」 을 중심으로
1980년대 노동문학은 문학의 현실참여 의지와 당대 민중들의 의지가 맞물려 우리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적·운동적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문학이 사회 변혁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실제로 문학을 통한 노동자들의 자각이 사회 변화를 불러일으키던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80년대 노동문학이 있기까지는, 물론 당시 사회의 기형적 모순과 국가권력의 병폐가 자아낸 혁명적 사건들이 추진력을 갖게 했지만, 그보다 이전 시기의 현실 참여 문학 논쟁들이 그 밑바탕이 돼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문학사에서 나타났던 운동으로서의 문학, 현실참여 문학의 흐름을 간략하게나마 먼저 짚어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현실 참여 문학, 사회 변혁의 실천적 의지로써의 문학들이 선택했던 창작방법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리얼리즘이란 낭만주의 문학의 서정주의, 비현실성, 과도한 공상성 등에 대한 반동으로 평범한 현실의 충실하고 완전한 재현을 목표로 했던 개념입니다. 이때의 리얼리즘은 낭만주의의 무기로써 외적 현실에 대한 충실성에 기댄 ‘자연주의’적 성향이 강했지만, 이는 축소된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예사적 리얼리즘론의 창시자인 플로베르(G. Flaubert)는 리얼리즘을 "일상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라 규정했습니다. 이는 점차 발전해서 객관적인 현실의 전체성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한 당대 사회와의 폭넓은 연관을 그려내야 한다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에 이르러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란, 말하자면 핍진한 재현을 통해 현실을 재인식하게 만들고, 주체의 각성을 유도한다는 것에 궁극적인 목적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현실 사회에 대한 폭로, 그리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전위 문학의 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문학사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은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1925~1935)의 결성과 그 활동 시기였던 1920년대부터 30년대 중반 무렵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제 치하 아래서 계급문학운동3)을 펼쳐오던 카프는 기왕의 계급문학 창작 방식4)에 다양한 문제제기가 일어나고 있었고, 조직 해체의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1차 소비에트 작가대회(1934)에서 발표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각국에 소개되었고, 이 방법론을 프로문학의 창작 방법으로 수용할 것인가를 두고 대대적인 '창작 방법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1935년 카프의 해산으로 본연의 성과를 충분히 거부지 못한 채 미완의 상태로 축소되었습니다. 이후 6·25 전쟁을 겪게 됩니다.
전쟁 후에는 파행적 경제발전이 자아낸 농촌사회의 황폐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농민들의 도시 빈민층화와 노동현실의 악화가 이어졌습니다. 열악한 현실이 갈수록 심화되자 또다시 한국 문단에서 문학의 현실 참여적 역할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5) 70년대로 이어진 리얼리즘론은 4·19 혁명 이후 민중 연대성과 저항의 서사로써 본격적으로 논의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분단 문제, 외세 문제, 계급 문제 등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던 현실 참여 문학이 80년대에 이르러 진정 ‘운동으로서의 문학’으로 정점에 이르게 됩니다. 70년대의 문학 역시 이념성과 실천성에서 강한 운동성을 지향하고 있었지만 그 주체가 지식인에 의한 노동‘문학’이었다면, 80년대에 이르러 그 주체가 직접적인 현실 사회의 주축이었던 노동자로 변하면서 그 실천적 의지와 운동성이 이전 시기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노동’ 문학의 차원에 놓이게 됩니다.
그렇게 1980년대 한국의 노동문학은 현장 노동자들의 글쓰기와 지식인 작가들의 글쓰기라는 두 가지 흐름이 ‘운동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단일한 흐름으로 합류하면서 나타났습니다.6) 노동자들의 글쓰기가 공식 문단의 주변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중반 무렵으로, 1984년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백무산의 「지옥선」 연작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노동자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폭발하면서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글쓰기 움직임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노동문학의 다른 한편이었던 지식인들의 글쓰기는 이전과는 달리 지식인 작가들이 직접 현장에 투신하면서 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당시 노동문학은 작업장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현장성을, 자본가와의 투쟁을 의미하는 것으로서의 투쟁성을, 민중 연대성과 계급성을 갖추도록, 그리고 전형을 창조하도록 요구받았습니다. 그리고 전형의 창조를 통한 객관적 진리의 재현을 위해서는 작품에 당파성이 구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작가가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을 체득해야 한다고 이야기되었습니다.7)
이러한 노동자와 지식인들의 글쓰기는 80년대를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제1기에 해당하는 노동소설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지식인 작가8)들이 담아내는 형식이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노동자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제3자의 시선(교사, 신문기자, 인간적인 소기업 사장 등)으로 노동문제를 관찰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제2기는 청년 지식인 작가9)들이 사회 변혁론을 통해 창작하는 방식입니다. 이 작품들은 특히 반미 문제와 노동 문제를 연관시킨 작품들이 많으며, ‘이념지향의 노동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논의하게 될 두 작품의 작가, 정화진과 방현석이 속해있던 제3기의 노동소설은 노동자 출신 작가의 작품 혹은 노동현장에 투신한 대학생 출신 작가들에 의해 쓰인 작품으로 80년대 노동소설을 대표하는 ‘실천 지향의 노동소설’을 일컫습니다.
1980년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실천적인 대학생들은 이제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정체성을 욕망했습니다.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 속에서 ‘계급 이전의 가능성’을 ‘노동자 계급’에서 발견한 것입니다.10) 제 3기의 노동소설 작가들이 대부분 대학생 출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실천 지향의 노동소설을 지향했던 작가들은 대다수 문학을 전공했다가 노동현장에 투신한 뒤 다시금 소설을 통해 운동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각주
1)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2』, 민음사, 2013, 260p 참조.
2) 오창은,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한 일고찰」, 『어문연구』, 어문연구학회, 2006, 137-138PP.
3) 한국문학이 3·1 운동 이후 자아에 대한 각성과 민족 현실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면서 식민 치하의 궁핍한 민생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노력했던 성과. 이때의 다양한 문학 양식과 담론들이 마르크스주의와 결합되면서 조직적으로 확대된 운동입니다. 식민지 현실의 계급적 모순에 대한 자각과 함께 계급의식의 고양과 나아가 계급적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던 정치적 투쟁을 일컫습니다(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2012, 305-307PP 참조). 이는 30년대 노동소설에서 가장 뚜렷한 성과를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계급투쟁으로의 진출이라는 이념과 투쟁 노선. 예술운동의 볼셰비키화를 목적으로 하여 예술운동의 조직보다는 일반적인 정치 사회 조직으로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계급 문학의 창작을 기계적, 공식적인 것으로 위축시켜 정치와 예술의 기계적 혼합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권영민, 위의 책, 305-344PP 참조).
5) 김우종(金宇鍾)은 「파산의 순수문학」(동아일보, 1963.8.7)에서 문학의 현실 참여 문제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이후 1960년대 전반기 한국문단을 뜨겁게 달군 참여 vs 순수 논쟁으로 문학의 자율성과 사회성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었습니다. 작가는 결코 사회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 대중과의 소통 중시, 전쟁 이후 고통 받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바라보기, 기왕의 순수문학에 대한 비판이 주 내용이었습니다.
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실천문학』 통권 57호, 실천문학사, 2000, 254p.
7) 조정환, 앞의 논문, 255-256PP.
8) 이혜숙, 윤정규, 송기숙, 양헌석 등
9) 김인숙, 정도상 등
10) 오창은, 앞의 논문, 149p.
참고 문헌
<국내서>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2012.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2』, 민음사, 2013.
오세영,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정시학, 2013.
<국내 논문>
선주원, 「노동소설의 운동성과 소설교육」, 『청람어문교육』, 청람어문교육학회, 2004.
오창은,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한 일고찰」, 『어문연구』, 어문연구학회, 200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실천문학』, 실천문학사, 2000.
조현일, 「노동소설과 정념, 그리고 민주주의」,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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