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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 비평글 쓰기 1980년대 노동 문학 Part 2

by 희휘낙락 2022.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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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으로서의 문학, 1980년대 노동문학

- 정화진 쇳물처럼, 방현석 「새벽출정」을 중심으로

 

1) 정화진의 쇳물처럼

  발표 당시 '노동자 투고 작품'이라는 표식을 달았던 쇳물처럼은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중후반의 시대적 분위기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청년 노동자가 아닌 장년 노동자 천 씨를 화자로 내세웠다는 점이 특징적이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 배열을 사용해 단순히 현장 보고 형식의 흐름이 아닌 소설 기법적 완성도도 높은 작품입니다.

 

 

 

  「쇳물처럼은 "보너스 한 푼 없는" 인천의 한 주물공장, '태양주물'에서 벌어지는 파업 과정과, 파업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다룹니다. 그 과정 속에서 주요 화자인 천 씨의 시선으로 노동자들의 세세한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인 천 씨,, 칠성, 근욱 등이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로서의 의식의 각성과 사상의 내면화를 이뤄내는 것을 보여주며 노동자 계급성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 씨는 태백산백이 보이는 광산촌에서 막장 생활을 했던 광부 출신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태양주물'에서 "경력과 기질로 인해 현장 사람들이 기꺼이 따를 만한 인물"입니. 그는 7년 간의 막장 생활이 건강을 해치는 것을 느끼고 도망치듯 도시로 상경했습니다. 하지만 야반도주하듯 광산촌을 빠져나와 자리 잡은 주물공장에서도 "운명의 장난"처럼 탄가루를 마시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초반에 짧게 언급되는 부분이지만, 천 씨의 나잇대를 생각했을 때 급속도로 커져가던 산업화의 바람에 도시로 상경했던 6~70년대의 이농민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재가 도시 변두리의 하층민에서 공장 노동자로 이행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삶은 어디에 있든, 마치 "탄가루"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원상태로 돌아오는 "운명의 장난"처럼,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 속에 갇혀 있습니다. 천 씨는 그렇게 주물공장에서 33년째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젊은 노동자 칠성이의 영향으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인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천 씨의 몰딩 단짝인 총각 칠성이는 김장 보너스에 대한 불만을 공장장에게 늘어놓다가 심한 모욕을 당합니다. 천 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방관자처럼 인내하지만, 1년 뒤 칠성이와 전 상무가 같은 문제로 다시 부딪쳤을 때 극적으로 파업을 주도하게 됩니다.

 

  얼마나 응어리져왔던 한이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긴 세월 제대로 펼쳐볼 엄두를 못 냈던 못난 의식이란 말인가! 그것은 얼마를 더 받고 덜 받고의 문제가 아니라 뼈를 깎는 노동을 하면서도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보지 못한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또한 그동안 자신들을 기만해온 당사자에 대한 쇳물 같은 분노였다.

 

“모두 연장 놔!”
환호성이 현장을 뒤흔들고 연장들이 달그락거리며 내던져졌다. 누군가 기둥에 붙어 있던 파이프 단가표를 부욱 찢어냈다.

 

  천씨는 물론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태양주물' 노동자들의 가슴속에서 "쇳물 같은 분노"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는 비도덕적인 자본가의 횡포에 지난날까지는 침묵으로 인내했지만,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는 노동자들의 자각과 혁명적 운동 의지가 내비치는 대목입니다. 천 씨의 일갈에 동료 노동자들은 연장을 내려놓고, 파이프 단가표를 찢어버립니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만일 이 작품에서 칠성, 근욱 등이 그 내면 속의 분노를 현실의 층위로 분출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운동으로서의 문학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칠성, 근욱 등은 자신들이 지닌 무의식 속의 분노를 뚜렷한 방향성을 지닌 의식의 층위로 드러내 억압적 환경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는 칠성이가 근욱이를 통해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이뤄냈다는 추측들이 군데군데 박혀있습니다. 근욱과 칠성이 만든 모임이 어느 순간 현장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거나, 전 상무의 오기에 근욱이 논리적으로 맞받아치는 장면으로 미루어 봤을 때 근욱과 칠성의 만남은 지식인과 현장 노동자의 만남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11) 이는 지식인들의 역할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 노동자로서 대표되는 천 씨와 칠성이를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다부지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허여멀겋게 부풀어 오른 비짓살", "콧잔등에 얹힌 개기름"과 같은 부정적인 표현으로 대변되는 자본가와 상반됩니다. 약소자로서의 노동자가 오히려 건강하게 표현되고, 유력자로서의 자본가가 비정상적으로 표현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입니다. 이 아이러니의 이면에는 노동 계급의 정당성을 상징적으로 응축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12)

 

 

 

  이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경향의 노동소설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총체성, 민중성을 목표로)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까지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법적 미학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의 말미에 드러나는 열악한 노동현실의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은 사회 변혁 운동의 일환으로써 노동 소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줍니다.

 
각주

11) 오창은,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한 일고찰」, 『어문연구』, 어문연구학회, 2006, 152p 참조.

12) 오창은, 앞의 논문, 153p.


참고 문헌
 
<국내서>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2012.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2』, 민음사, 2013.
오세영,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정시학, 2013.
 
<국내 논문>
선주원, 「노동소설의 운동성과 소설교육」, 『청람어문교육』, 청람어문교육학회, 2004.
오창은,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한 일고찰」, 『어문연구』, 어문연구학회, 200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실천문학』, 실천문학사, 2000.
조현일, 「노동소설과 정념, 그리고 민주주의」,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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