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글쓰기 연습] 비평글 쓰기 1980년대 노동 문학 Part 3

by 희휘낙락 2022. 5. 25.
반응형

운동으로서의 문학, 1980년대 노동문학

- 정화진 쇳물처럼, 방현석 「새벽출정」을 중심으로

 

2) 방현석의 「새벽출정」

  방현석의 「새벽출정」은 실제로 인천의 주안 77 공단에 있는 '세창물산'에서 1989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전개되었던 위장 폐업 분쇄 투쟁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담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실제 사건이 긴밀히 연결된 작품으로 1980년대의 노동자들이 지니고 있던 인간적 삶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한 치밀한 구성과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노동 현실과 노동자의 운명을 깊이 천착하여 노동자의 당파성과 저항의 서사를 뚜렷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세광물산 여성 노동자들이 100일이 넘는 장기농성으로 하나 둘 직장을 떠나가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가장 적극적인 조합원 가운데 하나였던 윤희의 이탈을 보여주면서 당시 학생 노동자들의 학비 조달 문제와 파업 투쟁 경비 문제 등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노동자들이 투쟁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환경과 그 문제점을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윤희의 부모에게 전달된 사장의 편지, 순옥의 부모에게 전달된 실업고 교장의 편지로 당시 노동자들을 대하는 사회적 강자들의 태도와 비겁한 행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강자들의 태도는 사장, 실업고뿐만 아니라 경찰, 정당, 노동부의 폭력적이고 안일한 대처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투쟁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노동자를 선으로, 자본가를 악으로 대비시켜 노동자 이외의 계층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그려냈다는 비판도 있겠지만, 당시 현실을 생각했을 때 단순한 허구적 설정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세광물산의 미정과 민영, 철순은 공장생활을 오래 한 숙련공들이었습니다. 회사는 "공정의 합리화와 기동성 있는 제품의 생산"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생산 라인을 둘로 분리해 작업의 경쟁을 부추기며 노동자들을 혹사시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정과 민영, 철순이 무리한 작업 경쟁에 대한 불만 의사로 회사를 결근하게 됩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몸담았던 만큼 회사가 자신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수렴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이들에게 사직서와 각서를 요구합니다. 자신들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회사가 너무도 쉽게 그들을 내치는 처우에 미정과 민영, 철순은 각성하게 됩니다.

 

나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 나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광물산에서의 나의 7년은 무엇인가.
사무실의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근면·자조·협동, 벽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사훈이 낯설었다. (중략) 강민영, 너는 일당 4,080원짜리 고용인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야. 그리고 이제 사장은 네가 필요없어졌어. 매일 구매하던 4,080원짜리 물건을 이제는 다른 곳에서 구입하겠다는 거야. 내가 앉혀졌던 자리에 다른 누군가 앉혀져서 도료를 만지게 될 거야. 7, 8년 동안 흐려져 있던 것이 한순간에 명확해졌다. 결코 사장과 자신들은 같은 줄에 서 있을 수 없음을. 7, 8년이 아니라 70년, 80년을 다녀도 그들이 서야 할 줄은 노동자의 대열임을 뼈아프게 확인하였다.

 

  민영은 회사와 자신들의 주종 관계를 깨닫습니다. 이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부당한 회사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파업을 주도합니다. 세광물산의 노동자들은 파업 과정 속에서 일시적이나마 승리('선흥정밀'의 도움으로 구사대 해체와 노조 인정, 성실 교섭에 대한 공장의 접수)의 경험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승리의 경험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농성 16일째에 들어서 철순이 실족사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정과 민영을 더불어 세광물산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알게 되었다. 너의 죽음 앞에서조차 회개할 줄 모르는 가진 자들의 오만함과 어머님의 눈물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중략) 너는 노동자가 해방되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너의 죽음으로 가르쳐 주었다……”

 

  노동 조합원들의 분노가 거세지자 사장이 합의하는 듯 보였지만, 얼마 안 있어 거짓 합의였음이 밝혀집니다. 노동자들은 다시 위장 폐업에 맞서 기나긴 농성에 들어가지만 사장은 교섭 자체를 거부합니다. 거기다 회사 측의 회유와 탄압을 이기지 못한 노조원들의 이탈까지 발생합니다. 그런 상황 속에 농성 150일째 되는 날, 세광물산 노동자들은 촛불의식을 치르고 비장한 새벽출정을 떠납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김세호 사장이 내놓은 2억의 돈을 우리는 뿌리치기로 결의했습니다. 김세호 사장에게는 돈이 가장 소중한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지에 대한 변할 수 없는 애정과 참 인간다운 삶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새벽출정」은 「쇳물처럼의 긍정적 전망보다는 '패배'와 '절망'의 연장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리고 「새벽출정」에서는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인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서 순수한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각성하고 투쟁하는 모습은 "'이제야 비로소 시작'이라는 담담함13)"으로 비장미를 연출합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으며, 지난한 투쟁을 거칠 수밖에 없는 주체의 각성 과정입니다. 「새벽출정」은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시작해 힘들게 쌓아가던 노동자로서의 인식이 다시금 좌절될 위기에 처해 있는, 바로 그 순간부터 출발합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복합적 시간 구성은 긴장이 반복되며 약동하는 서사와 얽혀 단순히 낙관적인 미래를 설정하지 않습니다.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며 보다 풍부한 현실, 그리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3. 나가며

  80년대 운동으로서의 노동 문학은 문학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러한 성취의 밑바탕에는 지난 시대의 문학 운동 연구들과 당대의 사회적 요인들(전태일의 분신, 지식인들의 노동 현장 투신, 노동자들의 대투쟁 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60년대와 70년대의 순수-참여 논쟁의 구도를 발전적으로 해체시키면서 문학을 사회적 현실 속에서 사고하도록 자극하고, 노동자들 스스로의 글쓰기 활동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14)

 

 

  하지만 한정적 소재(파업), 선진 노동자라는 전형적 인물상, 비타협적 투쟁(협상 없는 완전한 승리)으로 인한 승리라는 주제로 노동 문학이 수렴되면서 엇비슷한 작품들의 구호화와 도식성이 비난받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급진적이고 단호한 문제 설정을 위해 자본가 집단을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시각 역시 비난받았습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노동 계급을 각성시켜야 하는, 교육시켜야 하는 위치에 두었다는 점, '노동자'를 하나의 인간이 아닌 '노동'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대상화시킨 것에서 그들의 일상을 소품 취급했다는 점이 문제시되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문학 기류의 등장과 계급 문제 이외의 다양한 층위의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서 노동 문학의 입지는 순식간에 쇠퇴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문학은 항상 그 방법론에 있어서 단절과 반복을 거듭해왔습니다. 80년대 노동 문학에 가해지는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시의 노동 문학은 재해석되고 재평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노동 문학이 지닌 다양한 장점들은 '노동'의 형태가 단순히 공장만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속에 녹아든 현재에 이르러 다시금 새롭게 리메이크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 계층의 역사적 경험의 서사화, 곡선적이고 굴곡적인 인간사의 형상화를 이뤄낸 정화진의 쇳물처럼과 방현석의 「새벽출정」은 80년대 노동 문학의 대표작으로써 끊임없이 지속될 문학 운동의 한 본보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각주

13) 오창은,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한 일고찰」, 『어문연구』, 어문연구학회, 2006, 165p.

14)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실천문학』 통권 57호, 실천문학사, 2000, 256p 참조.


참고 문헌
 
<국내서>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1』, 민음사, 2012.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2』, 민음사, 2013.
오세영, 『문학이란 무엇인가』, 서정시학, 2013.
 
<국내 논문>
선주원, 「노동소설의 운동성과 소설교육」, 『청람어문교육』, 청람어문교육학회, 2004.
오창은, 「1980년대 노동소설에 대한 일고찰」, 『어문연구』, 어문연구학회, 2006.
조정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종말 이후의 노동문학」, 『실천문학』, 실천문학사, 2000.
조현일, 「노동소설과 정념, 그리고 민주주의」,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소, 2014.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