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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 비평글 쓰기 <장수산 1 외 4편> Part 2

by 희휘낙락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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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장수산 1」외 4

 

3-1. 정지용의 시 세계

  정지용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감각적인 언어 사용과 주관적 감정의 절제를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시는 1930년대 중반 빠져있던 종교적 시들을 제외하면 거의 일관되게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시가 종래의 서정시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자연을 통해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와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인식 그 자체를 언어를 통해 새롭게 질서화한다는 점입니다.

 

  정지용의 시 세계는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925년경부터 1933년까지의 감각적인 이미지즘의 시, 1933년 「불사조」이후 1935년경까지의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종교적인 시, 그리고 옥류동(1937),불사조(1928) 이후 1941년에 이르는 동양적인 정신의 시 등이 그것입니다.1) 여기서 우리는 정지용의 종교적인 시를 제외한 전, 후의 시들을 중심으로 그의 시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카°페 프란스

 

  위 시는 정지용의 전기(본격적인 문인 활동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이미지즘적 시입니다. 19266월호 학조지에 실린 것으로 유학시절 접하게 된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이 짙은 작품입니다. "카페 프란스", "루바쉬카", "넥타이", "보헤미안", "페이브멘트", "패롵", "-틴", "테이블" 등과 같은 새로운 용어뿐만 아니라, 심상의 형상화를 위한 불필요한 수사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라고 표현함으로써 밤비가 가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불빛의 희끄무레함과 우울한 정조 같은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 한놈의 심장(心臟)은 벌레 먹은 장미(薔薇)"와 같은 구절은 그 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표현기법입니다.

 

바다 2

 

  정지용이 바다를 제재로 한 작품들 중 가장 돋보이는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가 바다 2」입니. 위 시의 "바다"는 시인 자신의 내면적인 감정의 세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감각적인 인식의 대상으로만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모습을 "뿔뿔이 달어 날랴고" 한다고 표현했고, 끝없는 물이랑을 이루어 몰려와서 뭍에 부딪혔다 흩어지는 것을 "도마뱀떼"로 보았으며, 그 빠른 움직임을 "재재발렀다"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전체적인 시적 텍스트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연들은 모두가 이미지의 덩어리들입니다. 시적 대상으로서의 "바다"가 시인의 재기 발랄한 심상을 통해 새롭게 공간적으로 구성되어 나타납니다. 이때 느끼게 되는 감각적 선명성은 모두 일상적인 언어의 시적 변용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이 같은 즉물적인 언어적 감각은 그의 백록담의 시들에서 더욱 고조된 긴장을 수반한 채 정밀성을 더하게 됩니다.

 

  감각적인 언어의 사용과 더불어 위 시에서는 감정의 절제와 정서의 균제의 탁월함도 보입니다. 감각적 인상이나 공간성은 이 작품이 지니는 속성이며 특질입니다. 그러나 "바다"가 주는 시각적 인상을 이렇게 선명하게 조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다"라는 한 사물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것이 말하는 언어와 몸짓을 통한 시적 체험은 우리가 겉으로만 보고 평가하는 그 이상의 심층적 차원에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로 한 사물을 재창조한다고 할 때, 그 사물의 심층을 꿰뚫어 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다의 물결과 도마뱀떼의 움직임이 연결되고, 그것이 다시 꼬리와 발톱까지 이어지는 시상의 전개는 극히 자연스럽습니다. "바다"와 일체가 되어 융화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도마뱀"도 "꼬리"도 "힌 발톱"도 보이지 않고, 다만 평범한 바다만 보일 뿐입니다. 이러한 시적 표현은 사물의 언어와 교신하는 그의 특이한 언어 감각을 바탕으로 기왕의 고정된 감각과 인식을 모두 해체시켜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하는 시적 지향을 보여줍니다.

 

長壽山 1

 

  "바다"나 "신앙"의 시편들이 다분히 서구적 취향을 띤다고 할 때, "산"과 그에 관련된 일련의 후기 시편들은 동양의 관조적 세계에서 발상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의 시편들은 보다 깊은 심혼의 세계로 침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바다"나 "신앙"의 시편에서 보인 세속적인 갈등이나 동요 같은 것을 모두 해소한 차분하고 고요한 관조적 세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위 시는 겨울 달밤 산중의 고요를 시각적 심상을 통해 정밀하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아람도리 큰 소나무가 꽉 들어찬 "장수산"의 깊은 계곡에는 "멩아리"도 "다람쥐"도 "뫼ㅅ새"도 울지 않는 산중의 고요가 오히려 뼈를 저리게 합니다. 눈과 밤이 한데 어울려 "조희"보다 희고 "달"도 보름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산골에 나타나는 이런 바람도 없는 유심한 고요에도 흔들리는 "시름"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 이 시의 내용입니다. "조히보담 희고녀!"와 같은 감각적 심상을 빌려 구체화하고 있는 밤의 정밀과 고요는 눈 덮인 산중의 달밤을 하나의 깊은 정신으로 새롭게 형상화합니다.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선과 악 등 일체의 속루(俗累)를 끊고 장수산의 깊은 정적 속에 파묻힌 정지용의 마음은 보다 투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순간적인 자아를 버리고 대자연과 더불어 생성화육2)하는 무위자연의 원리에 돌아가려는 시도는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사유하고 있다는 것이 됩니다. 고요한 자연의 정경과 깊은 내면 의식을 교묘하게 조화시켜 놓음으로써 시적 표현이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각주

1) 최동호, 「산수시의 세계와 은일의 정신 -지용시가 나아간 길」, 이선영 편, 『1930년대 민족문학의 인식』, 한길사, 1990, 123쪽.
2) 생성화육 生成化育 : 자연이 끊임없이 만물을 만들고 길러 냄.


참고 문헌

1. 기본 자료
이선영, 『1930년대 민족문학의 인식』, 한길사, 1990.
 
2. 도서
정지용, 『鄭芝溶全集 1(時)』, 민음사, 1988.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1』, 민음사, 1993.
김학동, 『정지용연구』, 민음사, 1987.
이숭원 편저, 『정지용』, 문학세계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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