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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 비평글 쓰기 <장수산 1 외 4편> Part 3

by 희휘낙락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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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장수산 1」외 4

 

3-2. 정지용의 시 세계

白鹿潭

 

  위 시는 총 아홉 단계로 구성된 장시입니다. 1연은 뻑국채 꽃키가 점차 낮아지는 생태로 산정에 가까워져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1연에서 별이 켜드는 즈음 기진한 그가 2연에서 암고란환약巖古蘭丸藥같은 열매로 목을 축이고 다시 일어섭니다. 3연으로 향하여 바라보는 백화 나무는 백화白樺 옆에서 백화白樺가 촉루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백화白樺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와 같이 죽음조차도 자연현상으로 볼 만큼 그 감정적 요소를 모두 배제하고 있습니다. 4~6연에서는 귀신도 무서워하는 한모롱이”, “해발육천척海拔六千呎에 작자는 이릅니다. 그곳에서 끼리, “끼리 사는 모습을 봅니다. 어쩌다 어미 잃은 송아지가 이나 등산객에게 매달리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립니다. 7연의 풍란의 향기, 꾀꼬리 소리, 휘파람 소리, 물 흐르는 소리가 조화를 이룬 한라산경에 취하여 길을 잃었다가 되찾은 고부랑길에서 아롱점말을 만납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서 만난 모든 것들은 서로 어울리게 마련입니다. 두려움이나 미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조차도 잃어버린 경지로, 8연에서 다채로운 나물과 고산식물에 취합니다. 이윽고 9연에 이르러 백록담에 도착합니다. 그 신비로운 경관에 취해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어버립니다. 이렇든 작자의 마음은 사람도 신도 만들 수 없는, 스스로 그렇게 되어 그렇게 존재하고, 그렇게 변화하는 자연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백록담이라는 자연 공간을 넘어서지는 못하지만, 작자의 예리하고 깊은 관찰력과 섬세한 언어, 절제된 감성을 통해 새로운 시공의 백록담을 탄생시켜 시간과 공간의 확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외견상으로 보아 는 언어적 현란함이나 내용적 심오함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작품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야말로 그의 첨예한 시적 감각과 정심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닐까 반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비"라는 광물적인 속성을 생명체로 형상화하고 있는, 마음의 깊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작품 전체에서 일차적으로 주목할 것은 시의 표면에 배제된 시인의 숨결입니다. 인간은 제거되어 있고, 자연현상의 섬세한 묘사와 일관된 시적 진술은 정교한 언어로 소묘된 산수화의 화폭을 연상케 합니다. 이 작품은 가을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공간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이 과정에서 동적인 심상을 특이하게 공간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늦가을 산골짜기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과 그 수선스런 분위기를 섬세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구름, 소소리바람, 산새, 물살, 빗낟으로 이어지는 시적 심상의 결합은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의 조화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특히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는 마지막 구절은 붉게 물든 나뭇잎 위로 소란스럽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감각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자가 인식의 내용을 겉으로 드러내려고 한 게 아니라 인식 그 자체에 대한 감각적 반응을 표현한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지용의 시세계는 크게 세단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이미지즘적 시로는 「카°페 프란스바다 2. 마지막 단계인 동양적 정신의 시로는 長壽山 1, 白鹿潭, 를 가져왔습니다. 그의 작품 활동 초기가 뛰어난 언어적 감각과 회화성에 있다면, 종교적 색체의 시기를 건너뛰어 후기라 부를 수 있는 두 번째 시집 백록담에서는 자기 소멸과 속루를 끊고 자연으로 되돌아 가려하는 은일(隱逸)의 정신, 즉 보다 정제된 감정과 산수화와 같은 언어적 소묘를 통한 산수시3)가 꽃을 피게 됩니다. 초기는 서구 모더니즘에 나타나는 도시어, 문명어 등을 다소 남발한 면과 후기 시들에 비해 가벼운 감각적 이미지의 시라는 의견도 있지만4), 그의 시세계는 일관적으로 감각적 언어와 회화성, 절제된 감정과 정신의 성숙이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4. 문학사적 의의

  정지용은 한국 현대시의 발전 과정에서 시적 언어에 대한 자각을 각별하게 드러낸 시인으로 평가됩니다. 그의 시들은 두 권의 시집 『정지용시집』(1935)과 『백록담(1941)으로 집약되어 있는데, 자기감정의 분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20년대의 서정시와는 달리, 30년대는 시적 대상에 대한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에서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균제미는 시집 백록담에 이르러 거의 절정에 이릅니다. 이 시집에 수록되어진 장수산이나 백록담과 같은 작품에서는 시적 심상 자체가 일체의 동적인 요소를 배제합니다. 그리고 명징한 언어적 심상으로 하나의 고요한 새로운 시공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이러한 시적 방법에서 정지용이 체득하고 있는 은일(隱逸)의 정신을 보게 됩니다. 우리 시가 도달하고 있는 정신적인 성숙의 경지를 정지용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지용이 이룩한 정묘한 산수시는 당대 최상의 수준이며, 한국어가 지닌 언어적 가치를 극대화시킨 예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서구추구적인 아류의 이미지즘이나 유행적인 모더니즘을 넘어서서 우리의 오랜 시적 전통에 근거한 산수시의 세계를 독자적인 현대어로 개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정지용이 열어놓은 시적 세계의 첨단에 설 수 있을 때에 가서야 새 세대가 지용시의 한계를 넘어서 현대시의 전진로를 개척하는 선구적인 영예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

3) 정지용의 후기시를 뜻하는 용어로 최동호의 논문(「산수시의 세계와 은일의 정신 -지용시가 나아간 길」, 이선영 편,『1930년대 민족문학의 인식』, 한길사, 1990.), 123~156쪽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4) 김용직, 「정지용론」, 이숭원 편저, 『정지용』, 문학세계사, 1996, 257쪽.


참고 문헌

1. 기본 자료
이선영, 『1930년대 민족문학의 인식』, 한길사, 1990.
 
2. 도서
정지용, 『鄭芝溶全集 1(時)』, 민음사, 1988.
권영민, 『한국현대문학사 1』, 민음사, 1993.
김학동, 『정지용연구』, 민음사, 1987.
이숭원 편저, 『정지용』, 문학세계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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